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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 ...... 정호승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참회 정호승 나 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나무 한 그루 심은 적 없으니 죽어 새가 되어도 나뭇가지에 앉아 쉴 수 없으리 나 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나무에 물 한 번 준 적 없으니 죽어 흙이 되어도 나무 뿌리에 가 닿아 잠들지 못하리 나 어쩌면 나무 한 그루 심지 않고 늙은 죄가 너무 커 죽어도 죽지 못하리 산수유 붉은 열매 하나 쪼아먹지 못하고 나뭇가지에 걸린 초승달에 한 번 앉아보지 못하고 발 없는 새가 되어 이 세상 그 어디든 앉지 못하리 1950년 대구 출생 경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당선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

詩 소개 2 2010.05.21

똥구멍으로 시를 읽다 ...... 고영민

똥구멍으로 시를 읽다 고영민 겨울산을 오르다 갑자기 똥이 마려워 배낭 속 휴지를 찾으니 없다 휴지가 될만한 종이라곤 들고 온 신작시집 한권이 전부 다른 계절 같으면 잎새가 지천의 휴지이련만 그런 궁여지책도 이 계절의 산은 허락치 않는다 할 수 없이 들려 온 시집의 낱장을 무례하게도 찢는다 무릎까지 바지를 내리고 산중턱에 걸터앉아 그분의 시를 정성껏 읽는다 읽은 시를 천천히 손아귀로 구긴다 구기고, 구기고, 구긴다 이 낱장의 종이가 한 시인을 버리고, 한권 시집을 버리고, 자신이 시였음을 버리고 머물던 자신의 페이지마저 버려 온전히 한 장 휴지일 때까지 무참히 구기고, 구기고, 구긴다 펼쳐보니 나를 훑고 지나가도 아프지 않을 만큼 결이 부들부들해져 있다 한 장 종이가 내 밑을 천천히 지나간다 아, 부드럽게..

詩를 사랑하는 가슴에게 ...... 윤성택

詩를 사랑하는 가슴에게 윤성택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안의 새로운 여정에 나서는 것이다. 유배처럼 낯익은 것들로부터 추방된 혹독한 길을 걸을수록 글은 치열해지고 시공간을 초월해간다. 이러한 몰입에 이르게 되면 그때는 오히려 낯선 시간들이 내게로 걸어와 나의 일부가 된다. 그렇게 내가 사라진 곳에서 새로운 삶이 태어나는 것이다.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주술처럼 몇 가지 채비를 챙긴다. 나침반과 같은 뉴에이지 피아노 연주곡, 일상이 끼어들 틈 없이 방음이 완벽한 헤드폰, 이역을 기록할 한글프로그램 신명조 10 장평 97% 자간 -3% 줄간격 160, 공복을 공급해주는 진한 커피 한 잔. 그 다음은 무의미한 시간에 맞설 수 있는 구석진 방이면 된다.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