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소개 1

스며드는 것 ...... 안도현

warmdoctor 2020. 1. 7. 18:23


스며드는 것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간장게장을 흔히 밥도둑이라 한다. 반찬 삼아 밥을 먹다 보면 밥이 언제 없어졌는지 모르게 한 그릇을 금방 비우게 되기 때문이다. 많이들 알고 있듯이 간장게장은 게에 간장을 달여서 부어 삭힌 저장 식품인데 흔히 게젓이라 부른다. 사실 오래 전부터 먹었던 전통 음식이라는데, 근래 웰빙 바람을 타고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오뉴월 한창 알을 배고 있는 게가 제 맛을 낸다는데 보관만 잘 하면 1년 내내 알이 배어 있는 게장을 맛볼 수 있다.

안도현의 시 <스며드는 것>에는 간장게장을 만드는 과정 속에 드러나는 모성애를 그려낸다. 간장게장을 만들려면 우선 솔로 게의 겉면을 잘 닦아 낸 다음 물기를 빼서 통에 담고 그 위에 간장을 붓는다. 이때 마늘과 통고추를 넣으면 칼칼한 맛을 살릴 수 있다는데, 3일이 지난 뒤 간장을 따라내어 끓인 다음 차게 식혀서 붓는다. 같은 방법으로 서너 번 반복한 후 보관해두고 먹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통에 부은 간장이 게의 몸에 스며드는 모습이 시 속에 그대로 나타난다.

꽃게가 간장 속에 /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고 한다. 통에 담긴 게 위로 간장이 부어진 것이리라. 시인은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을 것으로 본다. 바로 알을 보호하고자 하는 꽃게의 모성애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버둥댄다 하더라도 통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니 간장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니 꽃게는 어찌할 수 없어서 / 살 속으로 스며드는간장을, 한때의 어스름을 /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인다. 그러나 간장이 온 몸에 스며들어 자신의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 가만히 알들에게 말을 한다. ‘저녁이야 / 불 끄고 잘 시간이야라고. 꽃게 - 즉 어미는 간장의 공포를 안다. 아무리 피하려 발버둥을 쳐도 끝내는 온 몸에 스며들어 딱딱한 껍질까지 먹먹해지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런 공포를 자식들 - 알에게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어떻게 해서든 자식들을 안심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자식들, 즉 알들에게 불 끄고 잘 시간이야라 거짓말을 한다. 그렇게 알들이 잠을 자는 동안, 시나브로 간장이 스며들도록, 그러나 간장이 스며드는 공포는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꽃게가 품고 있는 자식들을 보호하려는 안간힘, 그러나 어쩌지 못하고 결국에는 간장이 스며들어야 하는 과정에서 새끼들에게 닥칠 위험 혹은 공포로부터 안심시키기 위해 하는 하얀 거짓말 - 바로 꽃게의 모성애일 것이다.

이 세상 어느 어머니인들 그렇지 않겠는가. 열 달 품어 낳은 자식, 그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못하겠는가. 그 중의 하나가 위험과 공포로부터 자식들을 안심시키는 일이리라. 그런데 간장게장을 먹다가 어째 이런 생각을 하였을꼬. 시인의 상상력에 놀라면서도 시를 읽고 나면 꽃게의 모성애에 아니 내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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